국산 솔루션의 비애



내 한때, 솔루션 개발에 몸담은 적이 있다. 그 때는 그거 하나 잘 만들어 성공해서 꿈에도 그리는 "직장은 취미"로 다닐 정도의 부를 냅다 거머쥐는 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얘기지.


우리나라에서는 솔루션을 사다가 적용해서 먹구사는 사람들과 아예 국산 솔루션이랍시고 죽어라 만들면서 맨날 라면만 먹구사는 사람들 두부류가 있다.


돈 잘버는 건 당연히 외국에서 솔루션 사다가 팔아먹는 쪽이다. 먼저 이 쪽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기막힌 아이디어에, 월등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그리고 특히나, 잘 작성된 소개 자료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그 정도면 실제 효용가치가 어떻든, 몇억씩 가는 솔루션을 윗선에서는 겁없이 사버린다. 그리고, 사내 모든 시스템을 싹다 바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뒤따르는 도입효과, 설명회, 거기에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부장급 인간의 임원 인사.


신입사원 눈에는 지돈 아니라고 펑펑 써대는 몰지각한 임원들로 보였다. 자그마한 솔루션 하나가 몇억씩하니 그럴수 밖에......


경력이 조금 쌓여서, 왜 하필이면 그렇게 비싼 솔루션을 도입했는지를 직접 부장급에게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와서 물어보게 됐다. 왈,


외국에서 유망한 솔루션을 국내에 성공적으로 도입하는게 더 좋다. 돈 몇푼 아낄려다가 프로젝트와 함께 땅속에 파묻히기 보다는 좀 과하게 내더라도 확실히 서포트 받아서 적용하는게 크게 보면 회사에 훨씬 이득이란다.


책임지기는 싫고, 열매는 따먹고 싶다는 말이지만,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두 나중에 솔루션 도입할때 써먹어야겠다구 바로 다짐했지.


이번에는 두번째 경우, 솔루션 만드느라 라면 먹는 애들 얘기다. 나도 한때 몸담았다구 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 기술도 없으면서 솔루션 만든다고 까불던 부류였으니 더 한심했다.


CEO는 빨리빨리를 외쳐댔고, 덕분에 낮인지 밤인지 분간 안가는 생활끝에 엉성한 제품을 하나 완성하게 됐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매뉴얼이 없단다. 그래서 그것도 만들어냈다. 그랬더니 영업은 하지않고, 이렇게 저렇게 써보더니 몇 일만에 업그레이드할 목록을 넘겨주면서 빨리빨리 하란다.


그래서 그것까지는 참고 일을 했다. 근데, 시키는데로 다 해줬는데도 회사에서는 영업력의 부재로 인해서 한개도 못팔았다. 가격도 다른 제품에 비해서 엄청 싸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 팔기도 벅찼던 것이다. 꿈이 깨지는데는 한달도 안걸렸다.


이유인즉, 국내 기업들이 새로운 솔루션을 도입할때 따지는 제 일순위 조건인 레퍼런스, 즉, 어디 적용 성공사례를 내놓으라는 요구에 다 나가 떨어진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요구였다. 지 목걸고 솔루션 도입하는 건데, 어디 이름도 없는 회사의 솔루션을 적용한답시고 마루타 해줄 회사가 어디있겠는가?


대형 솔루션 한국지부 회사들, XXX 코리아라는 이름이 거의 대부분인 이런 회사들도 새로운 솔루션이 개발되면, 필드에서 레퍼런스를 쌓고자 대기업과 손잡고 그것도 모든것을 거의 공짜로 적용시켜준다.그러니 쬐그만한 회사는 엄두도 못내보는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차이가 나는 것은 저들은 솔루션에 해당하는 프로그램과 메뉴얼, 교육과정, 적용샘플예제, 고객센터, 성능비교자료등 모든것이 프로젝트가 완료됨과 동시에 한꺼번에 동시에 완료된다는 것이었다. 무서운 넘들......


얼마전 본 책에서는 미국의 개발자들에게 호소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들은 코딩을 넘어서 분석과 설계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단순한 코딩은 외주를 쓰는 형태로 전환하고 보다 높은 수준의 분석능력과 설계능력을 가져야만 도태되지 않는다는 주장의 글이었다. 공감가는 글이었다.


코드 한줄도 못짜는 코큰 인간들이 컨설턴트랍시고 나타나서 몇억씩 챙겨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환장 그 자체였건만, 정작 우리는 단순한 프리젠테이션이나 분석서, 설계서 만들기를 죽기와 같이 싫어하니 코더에서 언제나 벗어날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국산 솔루션의 자리를 자랑스럽게도 지켜가는 이들이 있어,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라면먹구 잘달린 임춘애처럼, 이들이 가진 내공이 하늘을 찌르니, 우리도 언젠가는 세계적인 솔루션을 보유하게 되리라.


- 출처 : 자작

- 최초 작성일 : 2003년 11월 4일

- 최종 수정일 : 2014년 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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